< 반성매매와 함께 날아 오르기 >
*페페(두레방 상담소 활동가)
‘안녕하세요!’
매일 힘찬 인사와 함께 두레방 상담소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저는 두레방 상담소에 입사한 지 이제 막 두 달 차가 된 신입 활동가 페페입니다. 반성매매 역사의 과거를 거쳐 현재하는 두레방에서 반성매매 활동가라고 말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두레방과 함께한 지난 한 달 동안 저에게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 일들을 조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저는 매일 언니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언니들과 안부 인사를 건네고 소소하게 일상 을 나눕니다. 상담을 무척 어렵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상담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언니들과 수다를 떨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합니다. 그런데 어떤 날은 대화가 잘 되지 않아 언니들이 화를 낼 때도 있습니다. 며칠 동안을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언니 눈치만 보고 앞으로 어떻게 언니에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서 우울한 하루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정말 잘하고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하게 인사를 하는 언니를 보면서 기쁘고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앞으로도 언니들에게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반성매매 활동가 선생님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여성 폭력에 맞서 싸우는 다양한 단체들이 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소명 의식을 불태우는 멋진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동행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됩니다.
또 멋진 사수가 생겼습니다. 현재 의정부 두레방 상담소에는 5명의 활동가가 함께하고 있고 모든 활동가 선생님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물심양면 도와주십니다. 궁금한 것은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이야기하고 잘 모르겠다고 말씀 드리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줍니다. 어떤 회사에서도 가질 수 없는 멋진 사수를 4명이나 갖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레방을 통해 반성매매 운동의 한 물결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난 5월 11일,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 기자회견에서 두레방을 대표로 발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내가 반성매매 운동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돌아보고 마음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법제화된 제도의 한계를 직면하고 성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운동이 과연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짧은 발언을 통해 반성매매 역사의 현장에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두레방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반성매매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소진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여성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달려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끝에는 여성 폭력이 근절돼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져서 실직하는 그날까지! 아자 아자 파이팅!
<나는 아직 배워야할 것이 많은 신입활동가이다>
*클로이(평택여성인권상담센터품 활동가)
지난 4월 21일, 센터품에서 진행된 고진달래 님(심리상담소 잇다)의 ‘반성매매 활동의 내용과 의미’ 강의는 반성매매 활동이 무엇인지, 활동가로서의 자세, 마음가짐 등 강사의 지난 활동을 통해 얻은 실질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강사님이 걸어왔던 시간을 함께 돌아보며, 나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에 대해서 한 번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올해 평택여성인권센터 품(아래, 센터품)에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 집결지뿐만 아니라 성매매에 관련하여 깊이 생각해 본 경험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성매매라는 것 자체에 대해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지식도, 생각도 없는 상황에서 입사 초반 성매매와 관련된 다양한 교육과 대화를 통하여 반성매매활동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 센터품의 신입활동가교육을 통해 성매매 구조는 단순히 한두 줄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웃리치 이전에 다양한 교육을 받았지만 나도 성매매집결지, 이 구조의 이면이 아닌 표면적인 것에만 현혹되고 있었다. 예를들어, 나는 그동안 받았던 교육과 활동으로 성매매된 여성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시야에서는 벗어났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직접 현장에 들어가보니 나의 시야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아직 내담자의 사회적 조건을 보지 못하고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활동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꼭 필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반성매매 활동가인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종종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나는 이번 강의를 통하여, 나만 하고 있는 고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경험이 많은 활동가들 역시 처음에는 이렇게 고민하였고, 활동하는 순간순간마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고, 위안을 얻게 되었다. 또한 소통을 통하여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도 알려주셨다. 나는 아직 배워야할 것이 많은 신입활동가이다. 활동을 하다보면 다양한 궁금점과 고민들이 생길것이다. 그럴때엔, 주변 활동가와 소통을 하며 고민을 풀어갈것이다. 또한 나의 활동의 방향이 올바르게 잘 가고있는지 되짚어볼 수 있는 활동가가 될것이다.
<다시 반성매매활동의 시작점에 서서…>
*하늘(평택여성인권상담센터품 활동가)
“잠시 눈을 감고 상상했다. 나는 지금 아프리카 초원으로 밤에 사냥을 나간 여성이 다. 칠흑 같은 밤이고 볼 수 있는 건 밤하늘에 대비되는 윤곽일 뿐이다. 사냥용 총을 들고 사냥감을 찾는다. 멧돼지나 하이에나, 나보다 작지만 위험하고 강한 중간 크기의 짐승이다. 기척을 느껴 돌아본다. 괴물이 내 어깨 너머에 있다. 돌아보니 코끼리다.(『페이드포』393쪽)”
책『페이드포』에 나오는 이 비유를 꼽은 이유는, 성착취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의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의 감정이 이 책의 비유에 맞닿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상담했던 여성과 함께 한 사건이 떠올랐다. 그 사건 속의 나와 여성은 칠흑의 어둠 속에 있었다. 달랑 총 한 자루 들고 실체도 파악하기 어려운 형체들로부터 우리는 한껏 예민함을 끓어올렸다. 그들의 온갖 불법적이고, 이기적인 행동들은 몇 년을 이어졌다. 사건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한시름을 덜었다. 성매매 현장에서 이러한 지난한 법적 공방은 자주 있는 일상이었다. 활동가의 일상은 그 여성의 삶에서 성매매가 차지하는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는 노력을 하는 것이었다.
그 일상이 몇 년간 지속되며 내게도 드디어 체력이 떨어지는 시점이 왔음을 늦게 알아차렸다. 마침 적절한 때에 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걸 놓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방에서 지내는 생활이 되었지만 내 안의 세계는 여전히 움직였다. 쉴 때만큼은 ‘성매매 관련된 기사나 글,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말자’면서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지인들이 아직 성매매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들이라 가끔 현장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은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었고, 서점에서 성매매 관련 책들은 사서 읽게 되었다. 그 안에서 만난 책 중 한 권이 『페이드포』였다. 저자의 7년의 성매매‘됨’의 기억과 10년간 집필했던 그 녹록지 않는 삶을 읽으며 이전에 활동했던 순간을 되짚었다. 세세하고 정신없이 쓴 저자의 생각과 감정들은 내가 만난 여성들의 말과 행동에 조금씩 이해를 더하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다시 반성매매활동을 하면 어떨까, 상상했고, 궁금해졌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나는 그 상상을 현실로 바꾸어줄 단체와 기관을 찾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평택여성인권상담센터품이었다. 새로 생겼고, 거리는 멀었다. 그럼에도 안 넣고 후회하는 것보다 넣고 후회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이력서를 넣었다. 그리고 난 지금 센터품의 활동가가 되어 이 글을 쓰고 있다. 성매매를 지나가고 있는 여성들에게 나는 행인1, 2 혹은 새로운 전환점의 시작에서 만난 사람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성매매에서 벗어나 시작점을 함께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센터품과 함께 말이다.
<백일잔치>
*두나(두레방 쉼터 활동가)
우리나라는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 아기가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면역력도 갖추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백일잔치를 하곤 합니다. 제 이름 앞에 ‘두레방 활동가’라는 명칭이 붙은 지 딱 백 일이 되는 날입니다. 두레방 신입 활동가로서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시기라고 자각하니 가슴 한 켠이 뻐근합니다.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함께 호흡해 준 선배 활동가들과 내담자 친구들의 얼굴이 머리에 스칩니다. 늘 긴장되는 출근길을 씩씩하게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일하러 간 곳, 두레방 특유의 따뜻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다가온 그 따뜻함으로 이제 막 두레방에서 호흡을 시작한 제가 일상을 살아낼 수 있도록 활동가 선배들과 내담자 친구들이 용기를 준 덕분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두레방의 일상에 다가가며 내담자를 위한 치료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절차가 있었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회복되는 것은 제 자신이었습니다. 호탕한 웃음소리를 함께 듣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갓 활동을 시작한 저는 백 여 시간의 교육을 통해 그동안 수많은 경험을 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간접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키워드는 ‘관계’와 ‘공감’입니다.
사실 저는 여성, 인권, 그리고 성착취 사회 구조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어쩔 수 없이 착취당한 여성의 피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여행길에서 마주한 여성 복지·여성 인권의 길이 다소 낯설기도 했습니다. 업무 역할과 어떠한 사회적인 의미가 늘어날수록 저는 마음을 단순히 정리하려 합니다. 가장 소중한 가치인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해야 할 일을 기꺼이 하려 합니다.
각자 지나온 삶의 시간은 다르지만 지금, 여기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 소중한 여성들은 수많은 억겁의 순간들을 버텨 오늘이라는 선물을 받은 주인공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오늘을 함께 추억할 서로를 응원하며 선물처럼 다가온 두레방에서의 제 삶 또한 아끼며 성장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걸음마를 배우기까지 수없이 넘어지고, 엎어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순간이 와도 두 손 탁탁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 감히 다짐할 수 있는건, 백일 동안 겹겹이 쌓인 내담자 친구들의 고마움과 선배 활동가들의 다독거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지키며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으로, 사람 냄새나는 두레방에서 즐거이 성장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