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수 (두레방 쉼터) 서쪽으로 과테말라와 북동쪽으로는 온두라스와 접경해 있는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는 멀게 느껴지는 나라이고 한국 선교사 파송지역으로 겨우 들어봄직한 나라이다. 파나마와 암스테르담을 거쳐 16-18 시간의 긴 비행 후에 24세의 엘 살바도르인 여성 아달리아는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오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달리아는 한국을 가게 되리라고는 꿈꾸지도 않았다. 그녀는 쌍둥이 자매, 동생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넉넉하지는 않지만 카톨릭 가정으로 단란하게 살고 있었고, 대학에서 공부하며 틈틈이
김태정 (두레방 상담실장) 소요산 성병관리소(몽키하우스) 이곳은 1970년대 초부터 진료를 했던 성병관리소로 총 이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다. 여기에서 진료를 받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여성들이었다. 이 성병관리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보산동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여기에는 캠프 케이시, 호비 등의 여러 미군부대들이 주둔해 있고 그 앞으로는 클럽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휴전과 함께 동두천에 미군부대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미군들을 위한 윤락시설 및 상점들이 생겨나기
김태정 (두레방 상담실장) 동두천에 작은 공간 마련 행사는 여성들이 의정부까지 오는 수고 덜고자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두레방에 도움을 요청하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동두천에서 거주 하고 있고 미등록 신분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등록된 여성들도 있지만 합법적인 신분이라 할지라도 업주의 감시로부터 자유롭게 밖을 나다닐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두레방 활동가들이 동두천으로 찾아간다 해도 안정적으로 만나서 얘기를 나누거나 상담을 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활동이 거듭될
박수진 (아시아민주주의네트워크 사무국 간사) ‘비무장지대를 종단하는 여성들’이라는 주제로 이틀에 걸쳐서 진행된 위민크로스DMZ (WCD)는 분단 70주년이 된 2015년, 1953년에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 그리고 한반도에 평화의 체제를 가져오기를 피력하기 위해 기획되고 열렸다. 이틀째날 개최된 2015 국제여성평화회의에서는 1부는 “각국에서 갈등과 분쟁을 끝내기 위해 여성을 조직한 경험 나누기,” 2부는 “
백은정 (두레방 활동가) 두레방에서는 예전부터 미술치료와 같은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지속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클럽에서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생활패턴이 몸에 익은 언니들이 오후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두고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공예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언니들의 효율적인 참여를 위하여 2주에 1회 진행하기로 하였다. 첫 번째 수업을 진행하였을 때 언니들이 수업을 진행해주신
조이스 (두레방 활동가) “Survivors are blamed & judged when they stay in abusive relationships but also punished & criminalized when they try to leave.” This statement was tweeted by @standwithnanhui on April 6, 2015. #StandWithNanHui is an ongoing campaign in
김태정 (두레방 상담실장) 두레방이 의정부에 터를 잡고 활동한 지도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간다. 그 사이 미군기지도 변하고 기지촌도 변했다. 한국전쟁이후 한국 땅 한켠에 자리잡은 미군기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렸고 그 중에 우리 두레방 멤버인 한국 언니들도 있었다. 휴전 이후 한국은 경제적으로 성장했으나 기지촌은 한국여성에서 외국인여성으로 성착취 대상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북쪽(의정부, 동두천)의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지는 오래 전부터였다. 특히
두레방은 기지촌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조직하고 격려하고 임파워링하는 일을 활동의 가장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뉴스레터를 발간하기로 했을 때 이 공간이 두레방의 활동가들에게도 또 우리 언니들에게도 살아가며 투쟁하는 얘기를 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마침 두레방 활동에 열심인 M으로부터 흔쾌한 승낙을 받았고 그렇게 해서 M의 한국살이 연재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이 다 그렇듯이 M의 한국살이도 희노애락의 연속입니다. 희망과 꿈을 놓지 않고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