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5일 미군 위안부들이 정부를 상대로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고 2017년 1월 20일 14시 서울중앙지방법원 동관 466호 법정에서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 판결이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정부는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이 제정· 시행된 1977년 8. 19.까지는 성병 환자를 격리수용할 법적 근거가 없었으므로 기지촌 위안부들을 낙검자 수용소등에 격리수용하여 치료한 행위는 법적 근거가 없는 행위로서 위법하다”라고 판시하고 원고 120명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재판에 당사자 증인으로 나갔던 박영자입니다. 오늘 우리의 이야기 일부를 들어주신 결과에 기쁩니다. 그러나 아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았던 피해의 한 부분이며 그 외 많은 피해에 대해 인정되지 않는 것엔 여전히 아쉬움이 남습니다. 국가는 일자리를 찾는 여성들이 기지촌에 유입하게 만든 직업소개소를 단속하지 않았고 미군들이 오는 클럽 즉 우리들이 있는 업소에 술도 싸게 들어올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런 점만 보아도 국가는 기지촌이 계속 유지되도록 하였습니다. 국가는 우리들을
저는 “두레방”이라는 작은 단체에서 20년째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유영임입니다. 두레방은 1986년 3월 의정부 기지촌에서 성매매하는 여성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로서 올해 30주년을 맞았습니다. 30년동안 두레방은 기지촌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상담, 치유 프로그램, 자활사업, 출판,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하면서 기지촌여성들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서 노력했고, 여성들의 자존감 회복에도 노력해왔습니다. 저는 그 30년중 20년 동안 매일 기지촌여성들을 만나면서 누구보다도 많은 이야기들을 여성들과 나누었고
두레방은 지난주 보산동의 두레방 회원으로부터 보산동 외국인전용클럽 일대에 출입국의 단속이 있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여권을 스캔할 수 있는 기계를 가지고 여권에 붙어있는 E-6비자를 떼었다 붙였는지 일일이 확인하여 몇몇 여성들을 연행해갔다는 것이다. (필리핀 기획사들이 필리핀노동청의 공식 인증을 받지 않은 경우 해외취업증명서를 받을 수가 없는데 이 증명서 없이 E-6 비자만 가진 여성들은 필리핀에서 출국할 때 문제가 생긴다. 하여 기획사들이 요즘 선호하는 방식이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게 하는 것이
알렉산드라 Alexandra The year 2016 has been rough to Filipina workers in Korea. Some of them were deported, detained, and held by Immigration. 2016년은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여성에게 힘든 한 해였다. 일부는 추방당했고 일부는 감금당했으며 출입국에 붙잡혔다. Did we make mistakes? Yes, but do we deserve those consequences? 우리는 실
지성 이른 추위가 찾아온 가을날 주말, 나는 두레방데이 행사에 가기 위해 세 번의 버스 환승을 했다. 서울 북쪽의 외곽 지역, 그것도 기지촌을 찾아 떠나는 초행길이 굉장히 멀게만 느껴졌다. 더구나 낯선 장소에서 나는 더 낯선 사람들을 마주할 터였다. 두레방에서 활동을 하는 친구도 있고, 여성 성매매나 성폭력 등 관련 일을 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다. 그런 나에게 ‘기지촌 여성’이란 단어는 낯선 것일 수 없었지만, 인식적 차원에서 안다는 것 이상의 것, 즉 그녀들을 직접 만나서 그녀들과 삶의 이야
최언니 나는 이제껏 한 평생을 밥 먹고 살기 위해 일만했다. 살기 바빠서 주말도 없었고, 돈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어디를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두레방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민속촌으로 야유회를 가서 좋았다. 여럿이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갔었다는 것이 좋았고, 두레방에서 다 같이 가니 참 좋았다. 그곳에는 초가집과 감나무가 있었는데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이랑 같은 것들이 있어 옛집 생각도 나고 좋았다. 풍물공연과 말 타는 공연을 본 것도 좋았는데, 말이 참 신기하게도 사람 말을 너무
김도현 목사 (뿌리의집 원장) 20년 전 이맘때였다. 스위스 베른의 늦가을, 서울보다 조금 일찍 어둠이 내렸다. 베른 부근에 사는 입양인들이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하고 모이는 날이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한 나는 미리 예약해둔 자리로 갔다. 먼저 온 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 보는 이였다. 검은 머리에 연푸른 눈, 창백한 살결을 지닌 여성이었다. 백인과 동양인이 다 깃든 얼굴. 캐서린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경기도 송탄에서 태어났고, 아빠는 미군이었다. 함께 살던 미군 병사가 귀국하고 두어 해
M After a year and a half in Korea, I decided that it was time to move on to more important plans; plans that were put on hold in order to go to Korea, and plans that I finalized within a few months of staying in Korea. The decision to go home didn’t come as easy as I tho
알렉산드라 보통 절박한 상황 하에 있는 사람은 쓴 약을 삼켜야 한다. 이것이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에 와 있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 중 하나다. 우리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그들은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필리핀의 가족을 떠나는 것은 큰 희생이다. 하지만 그러한 희생과 힘든 일이 좋은 삶을 보장해주기 충분하지 않다면 어떨까? 나에게 좋은 삶이란 화려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삶이란 자존감과 자부심이다. 존엄성이다. 내 이름은 알렉산드라, 나에겐 두 명의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