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 성매매처벌법개정 촉구 기자회견> “성매매 여성 처벌 조항 삭제하고, 성 착취 카르텔 유지해온 국가는 성매매처벌법 개정으로 응답하라!” 5월 11일 오전 11시 경기지역 여성 단체가 성매매처벌법개정을 요구하며 경기도의회 앞으로 모였습니다. 위드어스, 쉬고, 두레방, 돋음, 새움터가 함께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성매매여성 처벌조항을 삭제하고 성산업 관련자를 엄중 처벌해 성착취 구조를 해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집회 당일 날에는
평화를 위해 내딛는 발걸음, 불어라 봄바람 평화 순례단이 40일의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자본과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차별없는 세상, 모든 생명 함께 살아갈 세상, 평화를 준비하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힘찬 발걸음 중 4월 18일(월) 오후 1시에 두레방을 방문하여 뜻 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약 1시간 동안 두레방 원장님이 두레방은 어떤 공간인지 이야기하고 두레방이 지켜온 평화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후에는 과거 기지촌의 흔적을 찾아 빼뻘마을을 다같이 걷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군 기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낮은 성인식 수준에서 조직 개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현존하는 성차별을 해소하고 성평등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전담 독립부처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조직 개편에 맞서 여성폭력 방지 전담부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7일(목) 오후 2시에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현장에는 총 553개의 여성폭력 피해지원단체가 함께 했으며, 온/오프라인을 통하여 전국에서 천 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두레방 또한 그 자리에 함께 하며 여성폭력 방지에 대
지난 2021년 5월 17일(월) 오전 11시, 아침부터 추적추적 뿌린 비는 점심 무렵에도 그칠 줄 몰랐습니다. 기지촌 ‘미군위안부’ 생존자들과 두레방을 포함한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경기여성연대, 기지촌문제 연구자들이 모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우산을 펴들고 기자회견을 열었었습니다. “국가배상청구소송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현수막과 손 팻말은 약간의 물기를 머금어 무거원진 모습이지만, 오히려 “지난한 소송에 마침표를 찍어 달라”는 외침과 함께 시선을 압도했습니다. “인신매매로 기지촌에 팔려 온 15세 때
6~70년대 미군 기지촌에서 청춘을 보낸 할머니들이 당당한 배우로 무대에 섰다. 연극 <문밖에서>가 지난 7월 25부터 8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총 다섯 차례 공연된 것이다. 1976년 미군 전용 클럽, 1992년 기지촌 위안부 자치회 ‘국화회’ 창립총회 등 기지촌여성들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여생의 과제가 녹아든 연극 <문밖에서>. 공연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들이 겪은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고도 즉흥적으로 풀어낸 그곳, 네 번째 공연 날 두레방
*남궁희수 목사(행복한사람들의교회) 집에서 40여 분, 택시를 타고 두레방 앞에서 내리자 하얀 일층 건물 앞 일행들이 두런두런 모여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낡은 건물 안에는 소박한 환영의 음료와 함께 발열체크가 한창이었고,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나누는 인사소리가 한적한 마을에 즐거운 소란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파란 하늘과 내리쪼이는 햇살처럼 따사롭고 평온한 가운데 기지촌 역사기행이 시작되었다. 1986년 세워진 기지촌 여성인권운동 단체인 ‘두레방’은 사무국과 쉼터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무국이
*강시리(두레방 활동가) 순희 언니와 쭌은 개살구나무에 열린 열매를 세고 있다. 하나, 두울, 셋… 순희 언니(아래, 언니) : 야, 여기 봐, 여기. 여기 열렸잖아! 쭌 : 어디? 언니 : 쪼~기!! 쭌 : 어디? 아, 찾았다! 언니: 올해는 세 개나 열렸네! 처음 열린 거야 강시리 : 언니, 개복숭아는 언제 심은 거예요? 언니 : 그 (두레방) 세 번째 원장이 누구지?? 그때 현자하고 나하고 만든 작품이야. 씨를 다 먹고 깨끗이 씻어서 이틀 담가뒀어. 그리고 여기에 씨를 심었
추석도 지나고,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입니다. 지난여름 유난히 덥던 8월 한 날, 한낮의 내리쬐는 햇빛을 뚫고 <레즈비언문화배급소놀레>에서 4명의 손님이 두레방을 방문했습니다. 그날 동두천을 중심으로 의정부까지 기지촌을 같이 걷고 멈추고 또 걸었는데요, 이후 저마다 떠올랐던 느낌과 생각들을 정리해 보내주셨습니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감사함을 느끼며 기지촌 평화기행 참가자 4분의 소감 전문을 읽어보시죠. Ⅰ. 우리는 지난 역사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얘기해야 한다 동두천과 의정부 빼뻘마을 기지촌
의정부 역사교사모임에서는 7월 27~28일, 2일간 분단의 그늘, 동두천과 의정부 미군기지 답사를 진행했다. 동두천과 의정부는 둘 다 모두 한국전쟁 이후 미군 기지촌 주변에 형성된 상권에 의해 인구가 유입되고 달러가 돌면서 성장한 도시이다. 그런데 그 안에는 분단국가, 휴전선 인근에서 적의 침입에 대비해야하는 안보도시 역할을 감당하면서 만난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주한미군의 범죄에 외교적으로 평등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가난하고 어린 여성들이 자국의 영토에서 ‘미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인격, 인간으로서의
*준(두레방 상담소 활동가) 순이 아줌마와 현지 언니 빼뻘마을에서 언니동생 삼은 두 사람이다. 기지촌 클럽에서 처음 만나 서로를 데면데면 대하던 이들이 이제는 어느새 50세, 70세를 훌쩍 넘어 친구처럼 가족처럼 의지하는 사이가 됐다. 두레방 여름소풍 동참 권유에 “폐 끼치기 싫다”며 한사코 거절하시다가도 “현지 언니도 간다”는 말에 두말 않고 따라나서는 순이 아줌마와 “빼뻘마을에서 두레방은 걸러도 순이 아줌마네는 거르는 법이 없는” 현지 언니.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